Schottentor

 

 

 

 

긱사 창문을 열면 앞에 무슨 800년 정도 된 교회가 있는 그런 방..

 

 

 

 

비엔나 대학교(이하 빈 대학)는 빈 중심가에 있다.

빈 대학 바로 앞 역 이름은 Schottentor(*쇼텐토어)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역쯤 되는 느낌이다.

 

워낙 오래된 대학교라 증축과 개축을 거듭한 학교 내부는

일부는 현대식 건축 양식을, 일부는 아주 오래된 고딕 양식을 띠고 있어

밥 먹으러 갔다가 헤매기도 하고, 강의실을 잃어버려 또 헤매곤 했다.

 

중정처럼 안마당이 있는 중앙 홀 안에 껴안다시피 들어있는 작은 정원에는

졸업한 동문들의 두상의 나열이 있었는데,

제일 끝에 있는 조각이 프로이트의 것이었다.

 

빈의 날씨는 때로 혹독해서(그런 느낌은 내가 검은 머리 이방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 중정을 거닐 때엔 싸락눈이 휘날리는 겨울 초입이었는데,

낙엽이 나뒹구는 흐릿한 날씨 아래 검은 두상이 여상하게 나열된 꼴이

몇백년은 거뜬히 고독을 지나온 듯하기도 했고 또 그러기를 고대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학교 뒷편으로 두 블럭쯤 떨어진 곳에 맛있는 아시안 음식점이 있어서

가끔 한국음식이 그리우면 가기도 했고,

맛이 드럽게 없는 파스타 집에서 으깬 토마토가 잔뜩 들어있는 뇨끼도 먹었다.

 

빈에는 꽤 유명한 아시안 레스토랑이 몇 개 있었는데,

한국 방송에도 몇 번 나온 김소희 셰프의 [김 코흐트] 같은 식당은

나처럼 가난한 유학생이 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워서

살면서도 한 번 딱 기분내려 갔었다.

 

그 외는 대부분 일식, 중식이 전부여서

K마트를 전전하며 너구리(*RTA) 같은 걸 사먹었다.

빈은 나같은 인문대학생들 보다는 음대생들이 유학생의 압도적 지분을 차지했다.

한인 음대생들이 주로 모여 밥을 먹는다고 하여서

아침 한 끼를 한식으로 주는 레지던스에도 가 봤는데,

따듯한 밥 한 끼가 주는 행복이 무언가 그때 알았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Gottweis 교수님 아래에서 국제정치사회학을 수학했었는데,

내가 학교를 떠나고 딱 1년 뒤 부고장이 날아왔다.

내가 공부할 때만 해도

건강하고 열정적이셨고,

또 작고하시기엔 다소 젊은 연세셔서 정말 많이 놀랐다.

부족한 모습만 보여드렸던 것 같아서 죄송하기도 하고..

이미 한국으로 돌아온 터라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아쉬움도 컸다.

 

빈 대학이 구시가지와 시내 중심가에 딱 입지해 있으므로

자연히 내 행동반경도 그 수준에 머물렀는데,

처음엔 구글맵에 의지해 종종거리고 돌아다녔으나

나중엔 핸드폰도 없이 달랑 되너 박스 하나 들고 케이팝을 틀어주는

케이팝 팬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버블티를 마시곤 했다.

우리나라 아이돌 중 누구를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젠 잘 기억이 안 난다.

꽤 맛있는 버블티였는데, 우리나라처럼 "대학가 근처"라는 개념이 희박한

빈에서도 빈 대학 주변은 그나마 젊은 층을 겨냥한 무언가가 많았던 것 같다.

 

구시가지로 빽빽한 베이지색 건물들은 고색창연해서 어딜 다녀도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링슈트라쎄 안은 안방처럼 드나들었고,

슈테판플라츠, 호프부르크 주변도 늘 여유로워 산책하기 좋았으며,

밥 먹고 모짜르트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 읽기도 좋았다.

 

처음엔 그게 너무 좋았는데 나중엔 좀 질리길래(?..)

좀 외곽에 있는 식당까지 친구들이랑 맛집 검색해 나가보니

세상 판교 마곡 실리콘밸리가 거기 있더라.

 

딱 내가 두 발로 장 보러 다니고 밥 사먹으러 다니고

팔에 책 끼고 걸어다니던 그곳만 구시가지였고

두 블럭 나가니 드넓게 펼쳐진 신시가지는 베를린 상업지구가 따로없었다.

 

이후에 핀란드에서도 수학할 기회가 생겼어서

나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지만

처음 빈 대학에서의 강렬한 유학의 기억 때문에

자꾸만 유럽으로 떠나올 어떤 기회들을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시 유럽으로 올 때 중부가 아니라서 조금 슬프기도 했었고..

 

일을 하다가 짬도 차고 안정이 된다면

(그러니까 대충 10일 정도의 휴가를 통으로 쓸 수 있는 짬)

다시 그때 그 교정과(이젠 외부인이므로 들어가선 안 되겠지만...)

집 근처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2021년에 유럽을 간다? 사상은 빨갛고 위생은 더러운 저 유럽인들의 나라에?ㅎㅎ)

1년이 넘는 락다운에 아우성을 겪는 저 오만한 콧대의 나라는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더도 말고 딱 되너샐러드랑 레몬즙 뿌린 슈니첼이랑 브라트부어스트만 먹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