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일기 26 - 첫 자유형 뺑뺑이의 강렬한 체험수기

 

 

 

 

수영일기를 오랜만에 쓴다!

오늘은 정말 최초의 뺑뺑이를 경험했기 때문에, 기록으로 꼭 남겨두고 싶었다.

졸리지만 써봐야지..

 

 

월수금반까지 중급반으로 올라오면서(중급반 티오가 없어서 그동안 초급반에 유급중이었음) 이제 트랜스 중급반 아니고 진짜 찐 중급반이 되었다. 초급반 시절에, 중급반으로 올라가면 뺑뺑이를 많이 할거라는 강사님의 말이 있었지만, 그런가 보다 했었다. 50분짜리 짧은 강습에 뺑뺑이를 해봐야 뭘 얼마나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날이 되었다.

 

 

🔥불금🔥

 

 

 

요즘 내 수영생활 가장 큰 장벽은 새벽마다 내 품으로 꾸역꾸역 끼고 들어와서 내 가슴팍에서 웅크리고 자는 우리 강아진데.. 얘를 한없이 쪼물딱대다 보면 수영시간에 맞춰 침대 밖으로 나가기가 너무 힘들다.. 네 핑계같죠.. 그치만 사랑하는 내강아쥐를 한번만 이불속에서 뜨끈하게 품어본다면 아마 다들 이해할거다.. 

 

 

아무튼 이 귀여운 천사를 간신히 떼어내놓고 수영장으로 출근을 했는데.. 중급반 강사('님'자 안붙임 왜냐면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습관적으로 여자회원들 몸 터치를 많이함)가 오늘은 자유형 천미터만 돌고 집에 가자고 하는거다..

 

 

나는 월수금 중급반이 처음이기에 아무것도 모르므로 '이런 걸 원래 하나보다, *나 힘들겠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옆의 고인물 여사님들도 '뭐라는거야 이자식이..' 이런 반응이셔서 아 이게 원래 하던 커리가 아니구나 했다. 나중에 다 끝나고 샤워실에서 여사님들 대화에 껴보니 설마 한 500만 돌고 수업하겠지 진짜 1000을 시키겠어~ 하셨단다.

 

 

어쨌든 강사는 킥판 10개를 꺼내왔고, 떡처럼 우리 레인 앞에 쌓았다. 1번으로 선 초딩 남학생 두 명에게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킥판을 옆으로 하나씩 옮겨놓으라고 했다. 그렇게 두 번만 반복하면 천미터라는 것이다.

 

아 이거 진짜 하는 거구나?

 

 

 

 

 

그제야 엥 나 어쩌지?! 싶어졌다.

 

 

처음에 내가 4번으로 출발했는데, 세 바퀴 돌고 알았다. 

 

 

 

 

나 이 페이스 그대로 가면 진짜 디진다...

심박이 순식간에 치솟아서 헉헉거리며 호흡이 꼬였다.

그래서 턴 지점에 가서 쉬면서 뒷지점에 다시 합류했다.

 

 

그렇게 뒤에서 네 번째 쯤으로 자리를 옮겨서 다시 뺑뺑이를 시작했다.

턴 지점에서 쉬지 않고 터치만 하고 계속 도니 몇 바퀴를 돌았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쉬지않고 입수하느라 바빴다.

 

 

처음에야 벽차고 돌핀킥도 몇 번 했는데 나중이 되니 가까스로 돌핀킥 한 번 차고

5m도 물 속에 못 머무르고 바로 출수해서

자유형 발차기를 하니 스트로크가 늘어서 힘든 건 더 심해지고...

 

 

 

 

 

그냥 뽀글머리대두천사개랑 누워있지 왜 수영을 왔을까..

그러다가 또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못하는 구간 발생..

그러다가 또 하 *발 괜히 수영왔어..후회..(반복)

 

 

그렇게 몇바퀴를 돌고나니 슬슬 앞엣분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나도 페이스를 늦춰서 천천히 따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강사가.. 내 발목을 잡더니..

 

 

 

횐님.. 왜 여기 있으세요?

앞으로 가세요^^~

 

 

 

 

어거지로 끌려가면서도

"안돼..안돼.,..."

이러면서 끌려감..

강사가 비웃었다.

 

 

그렇게 다시 원래 순번이었던 네 번째로 들어와서 계속 돌았다.

확실히 나 말고 다른 횐님들도 힘든 게 분명했다.

열 바퀴는 당연히 넘었고, 이제 남은 바퀴가 해낸 바퀴수보다 줄어들었다.

 

 

이쯤되니 내가 수영을 하는건지 수영을 당하는 건지 모르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래도 팔꺾기 신경쓴다고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자세가 흐트러지고 있는 게 심각하게 느껴질 정도로

처지고 있다는 게 순간순간 느껴졌다.

종아리도 저릿한 게 쥐가 오려는 느낌도 났다.

 

 

앞엣분이 슬슬 또 느려진다 싶을 때...

강사가 또 내 몸을 휙 잡아서 앞으로 쭉 보냈다.

하 히발 이자식은 내 몸이 킥판인 줄 아나..

 

 

그렇게 결국 두 초딩들 뒤 성인으론 맨 앞에 자리잡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은 킥판이 두 개다. 

이건 두 바퀴 남았단 뜻이고, 열 여덟바퀴, 즉 900m를 돌았다는 이야기였다.

 

 

 

내 목표는 행복수영이지 수영선수가 아니란 말이야..

 

 

두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심박이 빨라지다 못해 머리로 산소가 못 가는 느낌이었다.

온몸이 무거워지고 발차기는 겨우겨우 관성으로 이어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가고 있긴 한데 호흡이 완전히 흐트러져서 강제로 4스트로크 1호흡이 되었다.

물을 먹는지 뱉는지도 모르고 물 속에서 으허억 크허억 거리면서 돌았다.

 

 

마지막 턴 지점에서 나를 앞으로 보내게 된 여사님이

"자기야, 한 번만 더 가면 돼. 내가 천천히 붙을 테니까 여기까지만 해보자!"

하고 기합을 넣어주셨다.

 

 

여사님도 많이 지쳐 있으셨을 텐데 너무 고맙고 그 힘으로 돌아가지 않는 팔을 열심히 돌렸다.

앞에 초딩 두 명이 더 이상 턴 지점에서 돌지 않고 멈춰 있는 게 물 속에서 보였다.

오 미터, 삼 미터, 이 미터...

 

 

결국 인생 최초로 천 미터를 30분 안에 다 돌았다.

 

 

 

 

처음엔 뭔갈 해냈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끝이야? 진짜 이제 더 안 돌아도 돼?

이 생각만 들었다.

 

 

숨을 한참을 고르고 나서야 얼얼한 다리를 물 속에서 접었다 폈다 하며 돌아봤는데

다들 꼴이 꼴이 말이 아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사님들, 아저씨들, 젊은이 할 것 없이 다 완전 푹 삶은 생선찜들처럼 익어있었다.

 

 

강사가 우릴 보더니 찐으로 즐거워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자식 장난아니다.. 변태새끼가 맞는 것 같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10분 남았으니 접영 두바퀴만 돌고 갑시다.

 

 

 

이거 완전 미친놈아냐?

다들 어이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우리반 접영 고수가 냅다 접영을 갈기는 바람에..

 

 

 

 

하 ㅋㅋ

진짜 ㅋㅋㅋㅋ

만세접영하고 난리남..

 

당연함.. 폼이 다 흐트러졌으니

평소에도 잘 안되던 접영이 되겠냐?

되겠냐고..

 

 

그렇게 돌고 오니 딱 48분. 더는 아무도 수영할 힘이 없었다.

 

 

몇 번이나 얼굴을 수영장물에 담갔는데 수영장 물이 너무 미지근해..

물 냉탕으로 바꿔줘요..

온몸이 뜨끈하고 지금 당장 내 몸으로 이 수영장 물을 다 끓는 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신이 얼얼하고 탈력감이 장난 아니었다.

 

 

 

 

강사는 그제야 순순히 우리를 보내줬다.

 

 

샤워실로 터덜터덜 패잔병처럼 올라오는 내내 정신이 없었다.

머리가 너무 뜨거워서 수모도 냅다 벗어던지고 샤워기 물을 켰는데

온수가 나오자마자 화드득 놀라서 찬물로 바꿨다.

찬물을 맞으니 그제야 거울 속 얼굴이 보였다.

벌겋게 상기되어서 새카만 고구마처럼 활활 불타는 내 얼굴..

 

 

샤워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처음 시작하던 때

25미터도 못 돌아서 헥헥거리고 레인 코스로프 붙잡고

숨 고르기 바빴던 6개월 전 왕초보의 기억도 났고,

이제 겨우 2주라 중급반 여사님들이랑도 서먹했었는데

천미터를 돌고 나니 묘한 동질감에 함께 이걸 해냈다는 뿌듯한 자신감도 들었다.

 

 

옆에서 나랑 똑같이 찬물 틀고 샤워하시는 여사님들과 눈인사를 하며

오늘의 기억이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공복으로 해낸 나에게(평소엔 간단히 사과같은 거라도 먹고 오는 편)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느낌!

 

 

 

그리고 열심히 일한 뒤 퇴근해서 필라테스까지 조졌다는 건 뿌듯한 내 안비밀.